전기차의 다단화와 주행거리의 관계?

2019년 9월 포르쉐의 첫 전기차인 타이칸이 발표될 때 전기차 최초로 2단 변속기를 탑재하여 주목을 받았습니다. 반면 테슬라 모델 S를 비롯하여 나머지 전기차들은 당시에도 지금까지도 모두 변속기 없이 감속기 만을 통해 모터와 바퀴를 직결시키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전기차에 변속기를 추가하면 어떤 장단점이 생기는지 살펴보고 과연 다단화가 전기차 점유율 확대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주행거리를 늘리는데 도움이될지 살펴보겠습니다.

 

전기차에 변속기가 없는 이유

대부분의 전기차들이 변속기를 탑재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유는 엔진에 비해 모터의 토크(torque)/출력 특성이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그래프는 전기차용 모터의 전형적인 토크/출력 곡선을 보여주는데 빨간색 선이 토크, 파란색 선이 출력을 나타내며, 가로축이 rpm이고 왼쪽 세로축이 토크, 오른쪽 세로축이 출력을 표시합니다. 최대 토크를 발휘하기 위해서 회전수(rpm)를 올려야하는 내연기관과는 달리 모터는 회전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최대 토크가 나오며 최대 출력에 도달하는 회전수까지 일정하게 최대 토크가 유지 됩니다 (빨간선의 평탄한 구간). 출력은 “토크 x 회전수”로 계산되기 때문에 회전수가 상승하여 최대 출력에 도달한 후에는 회전수와 반비례 관계로 토크가 줄어들지만 출력은 최대인 상태가 유지됩니다 (파란선의 평탄한 구간).

아래의 그래프에는 회전수가 11,000rpm 까지 표시되어 있지만 요즘 출시되는 전기차의 모터는 훨씬 높은 회전수까지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테슬라 모델 S에 탑재되는 모터는 18,000rpm 까지도 회전수를 올릴 수 있는데 내연기관차의 엔진 회전수가 6,000rpm 정도가 한계인 것을 고려하면 모터의 가용회전수가 엔진에 비해 3배 정도 넓습니다. 내연기관차의 경우 보통 6,000rpm을 사용할 때 1단에서 50km/h, 2단에서 80Km/h 정도의 속력을 낼 수 있는데, 내연기관차의 2단 정도에 해당하는 기어비에 모터의 회전수를 18,000rpm까지 사용하면 다단기어 없이도 시속 200Km/h 까지의 속력은 문제없이 대응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전기차의 모터는 정지상태에서 바로 최대토크가 나오기 때문에 내연기관차의 1단 기어처럼 높은 감속비도 필요 없지요.

전기차의 다단화와 주행거리의 관계?

전기차의 Torque/Power 곡선 (그림출처 – [1] “Comparison of dynamic characteristics of electric and conventional road vehicles”)

 

다단화의 장/단점

이 글을 쓰는 2021년 3월을 기준으로 다단(2단)변속기를 장착한 유일한 전기차가 포르쉐의 타이칸이므로 전기차 다단화의 장점을 포르쉐의 보도 자료를 통해 한 번 살펴 보겠습니다. 주행성능을 중시하는 포르쉐답게 다단화의 장점으로 늘어난 가속력(=휠토크)을 내세우는데 아래의 그래프를 통해 2단 기어의 탑재로 늘어난 가속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타이칸은 전륜과 후륜을 구동하는 모터를 각각 1개씩 탑재하고 있으며 2단 변속기는 후륜에만 장착되어 있는데, 아래 그래프에서 빨간색 선은 전륜, 초록색은 후륜, 파란색은 전/후륜의 합산 휠토크를 나타내며 가로축은 속력, 세로축은 휠토크를 표시합니다.

후륜의 휠토크를 나타내는 초록색 그래프를 자세히 보면 짙은 녹색과 연두색으로 나뉘는데, 짙은 녹색은 1단 기어의 휠토크 커브를, 연두색은 2단 기어의 휠토크 커브를 나타냅니다. 1단의 경우 큰 감속비(15:1)로 휠토크는 크지만 최고속도가 120~130Km/h 정도에서 제한되는 반면, 2단은 낮은 감속비로 (8:1) 휠토크는 작지만 250Km/h 까지의 최고속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아래 그래프의 회색으로 표시된 시속 100Km/h 정도의 영역에서 기어를 변경하면 높은 휠토크를 확보하면서도 최고속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래프에서 녹색 실선과 녹색점선 부분의 휠토크 차이를 비교하면 2단 기어를 통해 100Km/h 이하의 영역에서 최대 4,000Nm 정도의 휠토크를 추가로 확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포르쉐의 보도 자료에는 2단 기어 채택으로 인한 가속력 향상은 소개되어 있지만 주행거리 향상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이 없습니다.

전기차의 다단화와 주행거리의 관계?

포르쉐 타이칸의 토크 곡선 – 그림 출처 https://jalopnik.com/an-extremely-detailed-look-at-the-porsche-taycans-engin-1837802533

전기차에 변속기를 추가할 때의 단점은 간단한데, 변속기로 추가되는 수십 Kg 정도의 무게와 변속기 탑재로 인한 원가 상승이 있습니다. 포르쉐처럼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브랜드는 원가 상승을 감수하고도 브랜드 정체성인 주행성능을 강조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다단화와 주행거리의 향상

타이칸의 다단화 목적은 주행거리가 아닌 가속력의 향상임을 깨닫고 전기차의 변속기 탑재에 따른 주행거리 향상과 관련된 자료를 따로 찾아봤는데, 안타깝게도 제가 찾아본 자료에 따르면 전기차의 다단화는 주행거리를 크게 늘려주지는 못합니다. [2]의 논문에서는 링크에 공개된 Nissan Leaf의 회전수/토크에 따른 효율 측정치를 바탕으로 simulation model을 통해 전기차에 2단 기어를 탑재했을 때 킬로미터당 소비전력(Wh/Km)이 얼마나 향상되는지 계산했습니다. 연비 측정 cycle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2단 기어에 따른 Wh/Km 향상치는 0.75~1.5% 정도에 불과했다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3]의 논문은 조금 더 희망적인 결과를 보여주는데 2단 기어에 더해 다양한 형식의 CVT까지 포함하여 전력소모를 계산해 봤을 때 연비 측정 cycle에 따라 10~15% 정도까지 주행에 필요한 전력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결과를 보여 줍니다. 이 정도의 향상은 기어비를 자유자재로 변경할 수 있는 CVT에 대한 결과이고 2단 기어의 경우 [3]의 논문에서도 2~7% 정도로 연비 향상의 효과는 크기 않습니다. CVT를 탑재한다면 원가나 부피를 무시할 수 없는데, CVT의 원가나 무게 만큼의 배터리를 더 탑재하는게 오히려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기차의 다단화와 주행거리의 관계?

닛산 리프 electric powertrain의 효율 (출처 – “Power from Within”, Nissan LEAF Special Edition of SAE Vehicle Electrification, 2011)

변속기 탑재로인한 전기차의 연비 향상이 크지 않은 이유는 위의 그래프와 같이 전기차의 모터가 이미 전 구간에서 상당한 효율을 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는 Nissan Leaf 2012년도 모델의 모터 회전수와 토크변화에 따른 효율 그래프인데 이미 전 영역에서 85%의 효율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변속기의 역할은 모터의 동작이 효율이 높은 구간에 머물도록 회전수와 토크를 바꿔주는 것인데 이미 효율이 높아서 효율을 개선할 여지가 적은 상황입니다.

위의 그래프에서 주목할 점은 모터는 최대 출력을 발휘할 때 (그래프의 상단 경계선 근처) 효율이 높다는 것인데, 전기차의 효율을 높이고 싶다면 2단 기어를 탑재할 것이 아니라 소형 모터와 대형 모터를 탑재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내에서 천천히 주행할 때는 소형 모터를 최대 출력에 가깝게 사용하고, 고속주행시에는 대형 모터를 최대 출력에 가깝게 사용하는 편이 모터를 효율이 높은 영역에서 주로 사용하기 유리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전기차의 다단화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글을 마무리합니다.

 

References

[1] Semir Beganović and Suada Dacić, “Comparison of dynamic characteristics of electric and conventional road vehicles”, First Int. Green Des. Conf, pp. 149-155, 2012.

[3]Bottiglione, F.; De Pinto, S.; Mantriota, G.; Sorniotti, A. Energy Consumption of a Battery Electric Vehicle with Infinitely Variable Transmission. Energies 2014, 7, 8317-8337. https://doi.org/10.3390/en7128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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